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켄 덴노 (문단 편집) === 일본 역사상 최초의 황태녀 === 제45대 [[쇼무 덴노]]와 [[코묘 황후]][* 후지와라씨의 실질적인 시조인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딸] 사이에는 황자가 없었다. 유일한 아들이었던 [[모토이 왕]]도 요절하면서 슬하의 자식이라고는 딸인 아베 내친왕이 있을 뿐이었고, 후궁인 아가타노 이누카이노 히로토지(県犬養広刀自)에게서 태어난 아사카(安積) 친왕이 있었지만 후견 세력이 없었으므로 즉위할 가망은 없었다. 마침내 덴표 10년(738년) 1월 13일(양력 2월 6일)에 아베 내친왕이 '''일본 역사상 전무후무한 '황태녀'로 책봉되었다.''' 덴표 14년(738년) 5월 5일에는 [[겐메이 덴노|겐메이(元明) 상황]] 앞에서 오절무(五節舞)를 추어보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덴표 17년(744년)에 아사카 친왕이 죽은 뒤 쇼무 천황의 유일한 자식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부황 쇼무 덴노가 쓰러져 중태에 빠졌을 때, 타치바나노 나라마로[* 橘奈良麻呂, [[타치바나노 모로에]]의 아들]가 >"황사(皇嗣)가 서있지 않다." 며 키부미 왕(黃文王)을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당시 여제는 모두 독신(미혼이나 미망인)이었던 데다가 아베 내친왕이 즉위한다 해도 다음 황위를 누가 이을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서지 않았기에, 그녀를 대신할 다른 천황 후보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그녀가 붕어한 뒤에까지 계속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